잡담 우리가 잘 몰랐던 신사임당에 대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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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이 우리나라에서 현모양처의 대명사라고 불리고 있는데 실제로는 현모양처하고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습니다.
현모라고 불리는 이유가 율곡 선생에 대한 교육을 얘기할텐데 율곡 선생에 대해 어떻게 교육했다는 기록이 없어요.
어릴때 글 가르쳐주었다정도가 다 입니다.
실제 신사임당은 이율곡이 15살에 돌아가셨으며 이율곡은 어머니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머리를 깎고 절로 들어갑니다.
그가 본격적으로 성리학의 대가가 된건 절에서 나와 다시 환속한 이후였으니 신사임당이 이율곡의 학습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두번째 양처하고도 거리가 멀었습니다.
신사임당은 특이하게 그의 남편인 이원수의 집에 기거한 기간이 짧습니다. 그의 결혼 생활의 대부분을 친정에서 지냅니다. 이건 기록에도 나옵니다.
칠거지악 중에 하나인 불효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시부모를 거의 모시지 않았어요.
또 이원수가 주막의 여인과 친하게 지냈는데 이걸 심하게 질투합니다.
이또한 칠거지악에 해당합니다.
또한 그녀가 죽을때 절대 재혼하지 말라며 남편과 논쟁을 벌입니다.
이것은 칠거지악중에 말이 많은 부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이원수는 결국 주막집 여인을 첩으로 들입니다)
이처럼 신사임당의 삶을 보면 현모양처와는 거리가 멀었던 인물입니다.
마지막으로 신사임당이 서화에 능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그녀의 작품들중엔 진품이라고 인정받은 작품이 하나도 없습니다.
대부분 그녀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작품들입니다.(그래서 작품명에 '전신사임당 초충도' 이렇게 표기한다고 합니다. '전'이 신사임당의 작품으로 전해지고 있다라는 뜻이라네요)
왜냐하면 그 시대에는 여성 작가들이 낙관을 찍는 경우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후대에 남아 있는 신사임당의 낙관이 찍혀있는 작품들은 모두 위작으로 보고 있습니다.
저도 오늘 우연히 무언가 검색하다가 알게 됐는데 몰랐던 사실이라 내용을 공유해봅니다.
진짜 마지막으로 조선시대 여류 시인인 이매창이란 분이 있는데 이분이 신사임당의 딸이라고 소개한 블로그나 글들이 있던데
이매창은 전라도분이고 신사임당은 강원도 분으로 전혀 관계가 없으나 신사임당의 큰 딸의 이름도 이매창이었다고 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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