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와 ,, 선동렬 통산 기록은 미쳤네요 & 최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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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4년 아니였다면 통산 방어율 ㅎㄷㄷ
최초에 최동원이 몸값과 관련해 구단에 불만을 표출한 것 자체도 '메이저리그 진출을 포기했으니 그에 걸맞은 몸값을 달라'며 롯데 측에 1억을 요구했던 것이었다.
이는 당시 실업야구 롯데 시절 계약금 5천만원 가운데 절반 이상인 2,900 만원을 약속어음으로 받았다가 롯데 측이 지급을 미루는 바람에 그 돈을 송두리째 떼였던 일이 있던 상황이 있었기 때문에 최동원 측의 태도가 강경했던 것.
연봉 갈등이 절정에 달했던 1988년에는 당시 흥분한 롯데 팬들이 롯데가 경기에서 패배하자 연봉 갈등으로 출전하지 못하던 최동원의 집에 몰려가 유리창을 깨뜨리며 재계약 동의를 요구하기도 했다.
롯데에게 최동원은 늘 눈엣가시였으며 그가 선수협을 창설하자 이를 빌미로 강제 트레이드를 시킬수있는 구실을 만들게 된다.
가뜩이나 연봉협상으로 굉장히 밉상이 찍힌 상대였기 때문.
최동원 90만원 사건
롯데 에이스 최동원이 구단과의 자존심 대결로 연봉 재계약이 이루어지지 않아 개막전 등판이 불투명하다.
오는 4월2일의 프로야구 개막을 9일 앞둔 24일까지 최동원는 90만원때문에 구단과 양보없는 연봉 줄다리기를 계속하고있다.
최동원의 작년 연봉는 8천9백10만원.작년 연봉에 90만원을 인상해 9천만원을 채워 팀 에이스의 자존심을 세워 달라는 것이 최동원의 주장이다.
그러나 롯데구단은 해마다 연봉 협상때 골머리를 앓고있는 최동원에 대해 이면계약(옵션)을 내세워 『한푼도 더 줄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롯데 박종환 전무는『작년에 이미 올해의 연봉8천9백10만원을 주기로 합의된 것인데 또다시 90만원의 인상을 요구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최동원의 자존심보다는 구단의 자존심이 더욱 중요하다』고 잘라 말한다.
최동원 90만원 사건 당시, "병신 육갑하고 있네"라는 박종환 롯데 단장(전무)의 말을 전해듣게 된 최동원은, 이 발언으로 인해 피가 거꾸로 솟는 모욕감을 느꼈다면서, 6.25 전쟁에서 한쪽 다리를 잃은 상이용사였던 최동원의 부친의 장애를 비하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1988년 선수협 창설 추진과정에서 연봉협상 등의 이유로 마찰이 심하던 롯데 구단과 완전히 틀어진다.
당시 해태 타이거즈 김대현 선수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뜨고, 이로 인해 생계 곤란에 빠진 가족을 위해 선수노조인 선수회를 만들려 했으나 당시 독재 정권 + 구단의 강압적인 트레이드로 무산되어 버렸다.
선수협 갈등의 여파로 최동원은 강제 5:6 트레이드를 당하게 되는데, 롯데의 간판선수인 최동원과 김용철을 삼성 라이온즈의 기둥선수인 장효조와 김시진을 맞바꿔버린 초대형 트레이드였다.
이후 네 선수는 선수생활을 오래 지속하지 못한 채 은퇴해버리고 만다.
최동원의 장례 기간동안 마지막으로 일했던 한화 이글스에서는 비록 프랜차이즈 스타는 아니지만 4년간 코치로 연을 맺었던 점을 고려하여 한화그룹 임직원이 상을 당한 경우에 준해서 지원을 해주었다.
허나 롯데 자이언츠에서는 기일 오후까지 별다른 대응이 없었다.
롯데 구단에서 명예 감독 임명, 최동원 데이 명명을 검토하겠다고 한 것이 전부였으며, 이미 한화에서 빈소까지 차린데 비해 롯데는 고작 이 정도냐며 야구팬들에게 맹비난받았다.
https://namu.wiki/w/%EB%A1%AF%EB%8D%B0%20%EC%9E%90%EC%9D%B4%EC%96%B8%EC%B8%A0/%EB%85%BC%EB%9E%80%20%EB%B0%8F%20%EC%82%AC%EA%B1%B4%EC%82%AC%EA%B3%A0/%EA%B5%AC%EB%8B%A8%20%EA%B4%80%EB%A0%A8#s-1
=> 최동원 형님 83~87 이닝수 미쳤네요 ㅎㄷㄷ
KBO에 한화 이글스 구단 마크가 있는건 뿌듯하지만
한편으로는 롯데 xxx
=> 96년 주형광도 대단 ~!
야구 기사 ( 삼진 관련 ) 보고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최동원 형님의 안타까운 말년이 기록으로 보여서 다시 한번 롯데 x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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